광주대교구 「옥터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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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곡성군에 위치한 옥터성지이다. 이곳은 현재 곡성성당의 자리가 되었고 성당 뒷편에 옥터를 재구성하여

 

복원시켜놓았다. 성지(聖地)라도 되었는데 일전에 신부님께서 성지라는 한문이 두가지가 있는데 그 뜻이 다르다고하셨다.

 

그 당시때에 새겨듣는다고 하였는데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여기서 성지(聖地)는 종교적인 유적이 있는 곳이며 순교가 일어난 곳으로 풀이될 것 같다.

 

 

성전에 잠시 앉아 기도를 하고 옆길을 따라 성모상을 지났다.

 

비가 내려 초록이 더하였더니 성모동굴이 아담하고 소박한 것이 깊음을 더하고 있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제대가 있고 그 옆에는 옥사를 재현한 곳이 나온다.

 

〔정해박해〕

 

1827년 전라도 곡성을 시작으로 전라도 전역, 경상도 상주, 충청도와 서울의 일부지역에서 일어난 박해이다.

 

이 곳 곡성에서 시작된 박해는 전라도 전역으로 파급되면서 240여명의 교우들이 체포되어 전주감영으로 이송되었고

 

이어서 4월 22일 전주포졸들이 경상도의 상주에서 신태보(베드로)를 체포,

 

전주로 압송해가자 이를 계기로 경상도에서도 박해가 시작되어 교우촌을 습격 당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었다.

 

 

중앙정부가 정해박해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관장들과 포졸들의 탐욕과 개인적인 밀고에서 비롯되어

 

신자들이 즉시 사형선고를 받지 않고 옥에 갇혀 1839년 기해박해에 이르러서야 순교하게 되었다.

 

 

성당 옆문으로 들어가면 그 당시때의 삽화나 유물이 전시되었다.

 

신앙생활과 생계를 위해 옹기를 구웠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고

 

1827년 2월 어느 날 가마를 여는 축하연 자리에서 순교자 한덕운의 아들인 한백겸이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본

 

 주막집 주인이 현감에게 몇몇 신자들을 고발하였다.

 

이에 신자들을 체포하여 옥에 가두고 고문하는 탄압의 손길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정해박해까지 이르게 된 것을 알 수있다.

 

 

전라도 일대를 돌아보면서 든 생각이 여태 우리는 호남은 나즈막한 산이 대부분이라고 배웠지만

 

천호성지도 첩첩산중, 곡성도 마찬가지이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곡성성당까지 울창한 숲이 우거져 한참을 더 들어가야

 

마을이 나왔다. 박해를 피해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 순교자들은 얼마나 숨어들어 깊은 곳으로 왔는지 알 수 있다.

 

 

성지에 종종 순례객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을 한다.

 

" 우리가 그 당시에 살았다면 배교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tip. 「옥터성지」 이용안내

- 위  치 :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읍내11길 20

- 전        화 : 061-362-1004

- 확인도장 : 사무실 우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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